소설 지하철
본문
이번 역은 사당 사당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제1장 출근 전쟁
아침마다 출근 전쟁이 펼쳐지는 서울 지하철.
좁은 열차 안에 온갖 인간 군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마치 인간 도살장을 방불케 한다
서로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는 이들이 원치 않게 서로의 몸이 초밀착된 나머지 곳곳에선
답답함을 호소하는 짜증섞인 소리들로
열차 안은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그러던 중 예기치 않게 발생한 어떤 상황이 곧 닥치게 될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작용하는데
어딘가에서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서 익숙한 만화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띠리리 띠리리링~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햇빛이 쏟아지네~
.......
쿠우 쿠우~ 드르렁 드르렁~
.......
드르렁~ 드르렁~ 쿠우~~
~~~~~~~~~~~~~~♬
크흠~ 흠칫
주섬주섬..
여..여보슈?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거 내립시다~~~"
"아우! 밀지마! 좀!"
"아 씨 뭐야?!"
"뭐라고요? 왜 반말하세요?"
"어머! 밀지마요~~"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꺅!! 누구야!!"
"먼저 내리는 거 보고 타라고! 아 진짜!!"
"어어! 내려야 돼요"
"안으로 들어갑시다"
"밀지 마세요"
지옥철이란 명성답게 한바탕 전쟁이 펼쳐졌던 아침 출근 시간대가 지나고
어느덧 따스한 정오의 햇살이 한강 철교를 지나는 열차 안으로 들어오며
다소 썰렁한 객차 안에 사람들을 단잠에 빠지게 한다
그리하여 지하철엔 평화가 찾아오지만 지금의 고요함은
곧 이어 등장할 여러 유형의 인물들에 의해 산산히 깨져버린다
제2장 빌런들의 봉기
[오후14:30 지하철 4호선]
"가는 세월~♬ 세월아~~ 네월아~~"
"선생님 조용히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공공장소잖아요"
"흐흐흐흐흐 예에~~~~~ 흐흐흐흐흐"
"이..인생~~ 뭐~ 있나~~ 어.. 어차피~~ 하..한방이야~~"
"아~ 술냄새.."
[같은 시각 지하철 2호선]
"꼼짝마! 단소 맛 좀 봐! 이게 확! 야이 자슥아! 넌 뭬야!"
" 야 임마 자리에 앉아"
"넌 뭬야 너도 맛 좀 볼래"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어 신고 좀 해주세요"
"확! 이 자슥이! 확!"
"앉아"
"뭬 하! 이게 확! 확!"
"앉아"
'톡~'
"어 너 방금 쳤지"
"하!"
"쳤지?"
"하!"
"쳤지? 신고한다"
"하! 안 쳤어!"
[오후16:00 지하철 3호선]
"아~ 핸드폰..깜빡할.. 어! 선생님? 방금 좌석에서 주운 거 제 거예요 돌려주세요"
......
"그거 주세요 핸드폰 제 거예요"
......
"저기요? 얼른 주세요"
"봐..봤냐구? 니..니..니가 봤냐구 왜 나..나만 갈구는데 다..다른 사람도 있는데 왜 나만 갈구는데?"
"아니 무슨 말이에요 그거 제 거라고요 주세요"
"아..아니 니..니가 봤냐구?"
"저기 반말은 하지 말고 달라고요"
"아..아니 왜..왜 도둑으로 모냐구 시바새기야 니가 봐..봤냐구 시바새기야 왜 나..나만 갈구냐구"
[오후17:00 지하철 1호선]
♬ "인생은 색스! 인생은 색스!"
높은 굽을 신고 흐느적대며 춤을 추는 신원미상의 여인.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시민들이 너나할 거 없이 폰으로 촬영하느라 분주하다
맞은편 좌석에선 댄스삼매경에 빠진 여인을 달관한 자의 여유있는 표정으로 관람하는 한 어르신이 있었으니
♬ "인생은 색스!" 흐느적~
......
더욱 격렬한 춤사위로 점점 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어가고
쓰윽 쓰윽 미끄덩~ "인생은 색스!" ♬
......
더는 참지 못하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어르신
"허허~ 당신이 쵝오야?!"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서울 지하철.
평범한 자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이들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마지막으로 이 분야 정점을 찍은 비범한 인물들이
또 다른 사건과 더불어 등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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