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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그리고 박정희의 마지막 양주

익명
2019.10.26 13:42 1,247 0 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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눼엡! 예고했던 대로 '탕탕절'에 맞춰서 올리는 재밌는(?) 글입니다.


1. 들어가며
마사오가 탕탕으로 죽은 날, 마사오가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만찬 겸 여대생들을 희롱하던 중이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요.
또한 마사오와 차지철 건방진 새끼에게 총탄으로 물리치료를 시전한 의사 김재규 장군도 유명하고, 김재규의 묘역에 프리미엄급 위스키인 시바스 리갈이 놓였다는 것 또한 아시리라 믿습니다.

... 시바스 리갈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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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및 차지철 살해 현장검증 중인 김재규(중앙에 총 든 사람)와 김계원(좌측 쭈구리 아저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여기 놓인 양주병이 시바스 리갈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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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시바스 리갈 구형 병 / 하: 시바스 리갈 현용 병. Chivas Holdings (IP) Limited, (CC)BY-SA 4.0에 의해 공유

그런데 말입니다. 마사오의 마지막 술이 시바스 리갈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그러한 반박설 중 가장 큰 떡밥이었지만 해결된 것을 소개하고, 마사오의 추종자들이 아직도 믿고 있으며 해결되지 않은 떡밥을 손수 해결하고자 합니다.


2. 박정희가 마신 건 시바스 리갈이 아니었다, "로얄 살루트였다?"
한창 양주류 찾기에 재미가 들려 검색엔진을 MAX RPM으로 돌리던 중, 소위 '뗄감위키'라고 비하되는 곳에서 마사오와 로얄 살루트 일화를 기술한 것도 읽었습니다. 내용의 요지는 '고건이 회고담에서 밝히기를, 공화당 서리 박준규가 마사오에게 로얄 살루트를 선물하여 청와대 직원들도 한 잔 씩 마셨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더라, 양은 한 잔 쯤은 더 돌릴 수 있을 정도였는데 더 안 돌려서 서운했다'는 것과('고건 몰랐지?'의 그 고건 전 총리 맞음), '마사오가 죽은 날 마시던 술은 원래 로얄 살루트였는데, 중앙정보부에서 꼴에 서민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있다보니 병을 바꿔치기했다'는 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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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너무 뻔한 것이다보니 역시 뗄감위키의 서술을 요약하자면, '수입품이 귀했던 그 당시에 서민 대통령이라서 위스키 A에서 위스키 B로 바꾼다는 게 말이 되냐?' 정도로 쉽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사진 상 식탁에 놓아뒀다 뺄 때 생기는 자국 따위가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고, 마사오가 '막걸리 대통령'으로 이미지메이킹을 해온 마당에 금정산성막걸리를 놓든가 진로소주를 놓든가 했겠죠. 시바스 리갈의 급이 어떻네 로얄 살루트보다 얼마나 싸네 등등의 이야기는 (그 때의 국내/국제물가를 생각만 해도 쉽게 논파할 수 있지만)구차하다 못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3. 박정희가 마신 건 시바스 리갈이 아니었다, "국산 양주였다?"
'시스템클럽'으로 악명높은 지만엔을 중심으로 퍼진 괴담입니다.(꼴에 애초에 양주를 마신 게 조작이라는 소리는 안 했구만.) 퍼지다 퍼지다 이제는 그 뗄감위키에까지 소개가 되었더군요.
(전략) 김정렴 비서실장의 증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근무할 때 양주를 마신 적이 한 번도 없고 막걸리를 즐겨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을 검증한 장경삼 검찰관(판사를 지내고 현재 변호사)는 서거 당시 대통령이 마신 술이 시바스리갈이 아니었고 국산양주였는데 이를 주전자에 담아 마셨다고 한다. 아마도 현장접근이 금지됐던 기자들이 현장 사진에 나타난 술병의 모양만 보고 추측성 기사를 쓴 것으로 판단된다. (후략)
↑ 지만엔의 그 사이트에서 일부 발췌
이 씨발롬이? 어디서 구라를 쳐?
애초에 지만엔은 팩트가 정말 많이 틀렸지만 딱 이 부분만 복붙해서 보겠습니다.

* "시바스리갈이 아니었고 국산양주": 우선 '최소한 시바스 리갈이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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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현장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사진에 그림판으로 원 2개와 부분확대를 붙임
... 시바스 리갈 맞습니다.(노란원) 그런데 이 사진, 우리가 알고 있던 김재규 현장검증 사진과는 다른 각도였죠? 그 사진에 있던 양주병은 구석에 모셔진 게 아니라 테이블에 있던 녀석입니다.(빨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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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검증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사진에 그림판으로 원과 부분확대를 붙임
앞선 현장검증 사진을 다시 보겠습니다. 빨간 원으로 표시했던 그 술병을 이번에는 초록색 원으로 표시하였는데, 명암이 조금 어두워서 어떤 술인지 잘 안 보이네요. 적어도 병의 형태는 시바스 리갈 같죠? 마사오가 총 맞아 죽은 당시 국산 양주(위스키 한정)라고 하면 백화양조의 베리나인 시리즈와 진로의 길벗 시리즈, 해태의 드슈 정도밖에 없었는데요. 그 중 저렇게 시바스 리갈 모양을 한 국산 양주라고 하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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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위스키의 '길벗위스키 로얄', 네이버 styler2000 블로그에서 퍼옴
진로의 길벗(위스키) 로얄 하나뿐이죠. 닮긴 닮았습니다.
그런데 현장검증 사진을 보면 어째 레이블이 리갈도 아니고 로얄도 아닌 것 같죠? 답은 뒷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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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사진의 길벗 로얄에는 뒷면 레이블이 없습니다.(네이버 usung30블로그에서 퍼옴)(1982년 '길벗' 브랜드를 떼고 그냥 '로얄'로 이름을 바꾸며 뒷면 레이블이 생김) 반면에 아래쪽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시바스 리갈의 당시 뒷면 레이블(Whisky Auctioneer에서 퍼옴)은 저렇게 생겼죠. 이제 테이블 속 병과 비교를 해 보면 시바스 리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경삼, 너는 카메라의 위력을 너무 얕봤어.
그날 마신 술이 시바스 리갈이라는 것은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도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습니다.
변호사: 만찬에서의 술은?
김계원: 양주 시바스리걸이었읍니다.
↑ 김계원 사실심리내용, 1979년 12월 11일 경향신문 6면
어떻게 보면 사진이 어쩌고 하며 증거를 수집하는 것보다 이 증언 한 마디로 박살낼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괜히 조사했어...

* "주전자에 담아 마셨다": 이 구절은 의도적으로 죽을 때 마신 술을 숨기려고 쓴 부분입니다. 사건현장에 있던 주전자는 둘인데, 실제로 내용물을 나눠마신 주전자는 하나입니다. 그 주전자 하나가 시바스 리갈, 혹은 심지어 지만엔 말마따나 길벗 로얄이라고 치더라도, 그렇다면 옆에 있던 맥주는 시바스 리갈보다 더 격이 높게 주전자에 담거나 하지 않고 병나발 불었나요? 또 그렇다면 길벗 로얄은 진로위스키 공장까지 가서 주전자에 담아왔나요? 또또 그렇다면 밀주라서 레이블은커녕 병도 없는 막걸리는 무중력 상태에서 후루룩 마셨나요? 우와 대단하다 우주강국 대한민국

결국 마사오가 혹부리 영감과 스위스에서 에로틱하게 밀월을 가졌다는 수준의 X-Files급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10월 26일 오후 6시의 술은 시바스 리갈일 수밖에 없습니다.


4. 마치며
<세줄요약>
* 탕탕절 그날 그곳에 놓인 양주는 시바스 리갈이 맞았다
* 마사오는 독재자 살인마 색마 등등 다 맞다 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남에게는 지랄맞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꼰대 경제사범이었다
* 지만엔을 사설환전소로

김재규 장군은 간경변으로 술을 마시면 안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김재규 장군은 고인이고, 추모든 기념이든 조롱이든 결국은 산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니, 시바스 리갈을 한 잔 들거나, 경기도 광주시 엘리시움의 김재규 장군 묘역에 병을 들고 찾아가거나, 그도 아니면 지금껏 인터넷 밈으로 행해왔던 것처럼 낙지탕탕이 또는 탕수육을 식당에서 사먹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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