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절 기념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의거
익명
2019.10.2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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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안중근의 히토 히로부미 사살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경,
러시아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의 복부에 총알 두발을 박아 넣습니다.
안중근은 거사 직전 까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에
자신이 저격한 인물이 이토가 아닐 때를 대비해
수행비서관 모리 다이지로, 하얼빈 주재 일본제국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만주 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에게 각각 총알 한발 씩을 더 쏩니다.
총에 맞은 이토는 30분 뒤인 10시 경 사망하고
나머지 셋은 안타깝게도 부상에만 그칩니다.
거사 직후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안중근은 5개월 후인
1910년 3월 26일 교수형 당합니다.
거사를 함께 했던 우덕순은 3년형, 조도선과 유동하는 각 1년 6개월을 선고 받습니다.
거사를 배후에서 도운 최재형이
러시아인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일제는 이 변호사의 접견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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